《달을 품다 – 정연경 작가와 달항아리전》


달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은 매번 다르다.  《달을 품다》는 그 변화 속에서 삶의 순환과 비움의 충만을 되묻는다. 이 전시는 그 질문 속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성찰한다.


[전시 서문] 


침묵의 공간에서 은밀한 생명들이 피어난다.

달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떠오르지만, 그 앞에 선 우리의 시간은 매번 다르다. 정연경의 화폭 속 달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라, 삶의 순환과 감정을 가라앉힌 흔적이다. 매일 밤 마주하는 달의 얼굴은 늘 다른 표정을 띠고, 그 변화무쌍한 순간들이 화면 위에서 고요한 명상이 되어 흐른다.

 

그녀의 작품은 단일한 색채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화면 전체를 감싸는 색은 심연의 어둠이나 저 아득한 심해 속에서 느껴지는 수압처럼 비현실적인 막을 떠올리게 한다. 이 침묵의 공간에서 은은히 번져나가는 색의 변주는 막막한 그리움으로 스며든다. 그 고요한 표면 위에는 불현듯 낯선 존재들이 떠오른다. 물고기의 몸에 새의 다리를 지닌 생명체, 알을 품은 형상, 꿈틀거리는 식물의 줄기들. 이 기묘한 생명들은 작가가 어린 시절 들여다본 생물 도감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이미지들이다. 언캐니(uncanny)한 생명력으로 적막한 공간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생명의 근원적 신비를 속삭인다.

 

정연경에게 달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수행의 과정이다. 선을 긋고 색을 스며들게 하고 여백을 남기는 행위는 곧 사유의 방식이다. 장자의 무위처럼, 억지로 성취하기보다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녀의 회화는 ‘완성된 결과’보다 ‘머무는 감각’을 향한다.

 

이번 전시는 정연경의 달 연작과 더불어 다양한 매체로 재해석된 달항아리를 선보인다. 17~18세기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가 지닌 ‘비움의 충만’은 현대 작가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언어로 태어난다. 우곡요 이정태의 전통 기법, 류지안의 자개 달항아리, 빛찬윤과 체코 크베트나의 유리 달항아리까지, 흙과 자개, 유리라는 서로 다른 재료는 달을 각기 다른 목소리로 해석하며, 시대를 넘어 인간이 품어온 원초적 그리움을 증언한다.

 

달항아리의 원형은 사실 불완전함 속에서 완성된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말했듯, 조선 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작은 흠, 불균질한 유약, 예측 불가능한 변형—이 모든 '결함'들이 오히려 달항아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러한 겸허의 미학은 정연경의 회화와도 깊이 공명한다. 작가 역시 완벽한 형태를 쫓기보다는, 색이 스스로 스며드는 과정을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태어나는 우발적 아름다움에 귀 기울인다.


《달을 품다》는 달을 바라보며 품어온 우리의 사랑과 소망을 되묻는 자리다. 그것은 추석의 보름달처럼 충만하면서도, 날마다 다른 얼굴로 떠오르는 달처럼 변화무쌍하다. 전시장에 흩어진 달의 형상들—캔버스 위의 달, 흙으로 빚어진 달항아리, 자개로 빛나는 달, 유리 속 달—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담아낸다. 관람자는 이 달빛의 정원을 거닐며 자신만의 달을 발견할 것이다. 달은 우리의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자, 가장 신비로운 타자다. 이 전시는 그 달빛 속에서 우리 자신의 시간을 다시 발견하고, 예술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귀 기울이게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끝없이 달을 올려다보는가.

 

큐레이터 최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