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의 공간》
《추상의 공간》은 박동수와 엔리코 엠브롤리가 색채와 형태로 직조한 또 다른 차원의 온도를 선사한다. 한편에서는 먹과 한지, 반복된 모듈이 시간의 층위를 촘촘히 쌓아 올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돌출된 물감층과 선명한 색채가 표면을 일렁이게 하며 공간 전체를 움직임으로 채운다. 이 전시는 추상을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을 재해석하는 장(場)으로 제시한다.
[전시 서문]
여름이 마지막 열기를 토해내는 8월의 어느 오후, 스텔라갤러리의 문턱을 넘는 순간 밖의 작열하는 햇살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온도가 우리를 맞이한다. 그것은 색채가 만들어내는 온도이자, 시간이 쌓여 만든 고요의 온도이다. 《추상의 공간》에서 엔리코 엠브롤리와 박동수가 선사하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들이 구축해낸 것은 우리의 일상적 감각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증언이다.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보는 것' 이 얼마나 제한적인 행위였는지를 깨닫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지하 작업실에서 가지고 놀던 나무와 공구, 작은 부속품들로부터 조형의 세계에 눈을 뜬 엠브롤리는 물질이 지닌 고유한 목소리를 듣는 법을 일찍이 터득했다. 그의 'Aura' 시리즈는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 경계에서 태어나는 제3의 언어이다. 'BLUE Aura'의 깊고 푸른 표면 위로 스며드는 빛의 파장을 보고 있으면, 색채가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임을 직감하게 된다.
한편 박동수는 베르사이유와 서울을 오가며 전혀 다른 추상을 탐구해왔다. 그의 '시공 추상' 연작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시간의 물질화이다. 사각형의 프레임이 모여진 형태의 작품 안에 각각 다르게 분포된 먹의 흔적들은 우주의 형성 과정을 암시하며, 원형의 궤적과 사각형의 틀이 만들어내는 리듬 안에는 작가가 20년간 축적해온 시간에 대한 사유가 직조되어 있다.
두 작가의 작품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할 때, 우리는 추상이 결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엠브롤리의 폭발적인 색채와 박동수의 명상적인 격자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전시장을 걸으며 우리는 점차 다른 종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밖의 세계가 속도와 효율의 논리로 돌아간다면, 이곳은 질감과 농도의 시간이 흐른다. 추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해력을 요구한다. 문자 대신 색과 형태로, 논리 대신 직관으로 읽어내야 하는 언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터득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획득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표정에서도, 비 내린 후 아스팔트 위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늦여름의 스텔라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이 여행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숨어 있던 미지의 공간으로 향하는 초대장이다.
Curator: YANG WON CHOI
[전시 정보]
▣ 전시기간: 2025.08. 22(금)-2025.09.07(일)
▣ 장소: 스텔라갤러리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49길 17 (선정릉역 1번 출구 도보 5분)
▣ 운영시간:13:00~18:30(월,화 휴무)
▣ 문의 및 수신거부: 02-512-7277
@stellargallery_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