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엽과 황인란, 두 작가가 그려낸 그녀는 단순한 인물상이 아니다.
그녀는 감정의 기억이고, 미의 형상이며, 사유의 거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이상(理想)의 자화상이다.



◎ 전시명: 《 Another Her - 또 다른 그녀 》

◎ 작가명: 권경엽 × 황인란

◎ 날짜: 2025.05.10 (토)  – 2025.05.28 (수)

◎ 시간: 13:00 ~ 18:30  (휴무일: 월요일) 

◎ 장소: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49길 17, 스텔라 갤러리(선정릉역 1번 출구)

◎ 문의 : 02-512-7277 

◎ 인스타그램 @stellargallery_official



전시 서문

《Another Her》 展 - 감각의 정원과 숭고한 침묵 사이


 

우리는 자주 얼굴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얼굴에 깃든 침묵의 무게를 온전히 감지하는 일은 드물다. 《Another Her》는 두 명의 예술가, 권경엽과 황인란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전시는 단 하나의 얼굴이 아닌, 수많은 이름 없는 존재들의 형상, 우리 안에 잠재된 '또 다른 그녀'를 불러낸다.

 

두 작가는 고전 초상화의 트로니(Tronie) 기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하며,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개념적 형상화로 나아간다. 권경엽은 향기와 감각이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회화로 번역하며 감각의 시각화를 실험하고, 황인란은 침묵이라는 개념을 조형 언어로 드러내는 내적 구조의 회화를 선보인다. 이들의 인물은 회화의 전통적 문법 속에 머물지 않고, 감각적 은유와 개념적 응시를 통해 새로운 시각 언어를 구축한다. 이때 그들의 회화는 고대 그리스의 미학 개념인 칼론(καλόν) -외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고결함이 교차하는 이상적 미의 개념-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가 된다.

 

권경엽의 회화는 감각과 기억, 그리고 치유의 미학을 축으로 한다. 그녀는 상처 입은 존재의 기억을 끌어안고, 감각을 통해 시간의 결을 짚는다. ‘화이트 시리즈’는 창백하고 침묵에 잠긴 인물을 통해 상처의 잔류와 존재의 투명성을 드러내고, ‘보타닉 가든’ 시리즈에서는 상처를 감싸는 꽃의 메타포로 치유와 회복의 서사를 말없이 속삭인다.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향기이며 감정을 일깨우는 심상의 은유다. 그녀는 프루스트의 ‘순수지속’을 따라, 향기를 예술의 언어로 끌어들여 감각 너머의 시간을 탐색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바로 '감각의 시각화'라는 권경엽 회화의 핵심적 지점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블루 시리즈’에서는 푸른 하늘과 바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감각적 평온과 초월의 여유를 구현한다. 이 장면들은 그녀에게 있어 블루, 곧 신성함과 자유, 영원의 색으로 이어진다. 이 세 시리즈는 감정의 시간축을 따라 펼쳐지는 회화적 삼부작이자, 존재의 본질을 향한 권경엽의 내면적 항해이다.

 

그녀의 인물들은 이유 없이 빛난다. 설명하지 않기에 더 강하게 존재하며, 그 얼굴은 우리가 고통과 구원의 경계에 섰을 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것은 존재의 깊은 고백이자, 감각으로 전해지는 침묵의 시다.

 

황인란의 작업은 인간 내면의 고독과 철학적 물음을 조형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유의 회화다. 알베르 카뮈의 사유에 뿌리를 둔 그녀의 작업은,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짊어진 딜레마와 초월의 열망을 응시한다. ‘침묵의 알레고리’ 속 소녀는 눈을 감고 있다. 그녀는 침묵 속에서 새와 교감하고, 꽃의 향과 자연의 숨결을 통과하여 관람자에게 말을 건넨다—언어 이전의 언어로.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침묵의 조형화'를 통해, 말보다 깊은 울림을 전하는 내면의 회화다.

 

황 작가는 스스로를 낙관주의자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희망의 산물이 아니다. 그녀의 낙관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도덕성과 초월의지를 신뢰하는 고요한 신념에서 비롯된다. “나는 창조론과 성선설을 믿습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선한 존재입니다.” 이 고백은 그녀의 회화가 단순한 미의 탐구를 넘어서, 존재의 윤리와 이상적 인간상을 향한 철학적 추구임을 증명한다.

 

‘피안의 세계’, ‘영혼의 집’ 속 인물들은 자연과 함께 고요히 호흡하며, 세계와 조용한 화해를 시도한다. 꽃과 새, 사슴은 그녀가 사랑하는 존재들과의 교감을 상징하며, 그들과 함께 있는 인물은 더는 현실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자아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Another Her》는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다성(多聲)적 표현이자 변주이다. 권경엽의 ‘감각의 정원’과 황인란의 ‘숭고한 침묵’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동일한 진실에 도달한다. 예술은 내면의 고통과 외적 이상을 잇는 다리이며, 이 전시는 그 다리 위에 놓인 조용한 풍경이다.

 

이러한 접근은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예술철학과도 맞닿는다. 그는 예술을 단순한 표현이 아닌, 인간 존재의 기원을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로 보았다. 《Another Her》의 두 작가는 바로 이러한 ‘신화적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권경엽은 감각의 언어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고, 황인란은 침묵의 미학으로 실존의 깊이를 드러낸다. 특히 ‘블루 시리즈’와 ‘피안의 세계’는 예술이 제시하는 초월의 장소이자, 반복되는 탄생의 신화를 시각화한 풍경이다.

 

이 전시는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무게를 감싸는 사유이며,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치유의 언어이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한 시적인 고백이다. 그 고백은 이 봄. 스텔라 갤러리의 고요한 공간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Curator. 최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