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흐르고, 인연은 남는다. 한 화면은 호흡하는 색으로 내면의 파동을 드러내고, 다른 화면은 세라믹의 결로 관계의 흔적을 붙든다. 흐름은 우리를 흔들고, 결은 우리의 걸음을 늦춘다. 그 사이에서, 말이 되기 전의 마음이 조용히 형태를 얻는다.



[전시 서문]


The Texture of Emotion — 감정의 결

 

우리는 매일 아침 같은 문을 열고 나가지만, 그 문턱을 넘는 마음은 매번 조금씩 다르다. 어제의 대화가 남긴 여운, 오래전 누군가가 건넨 말의 무게, 이름 붙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의 잔상들—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층을 이루며 쌓인다. 감정과 관계의 본질은 언제나 말보다 앞서 도착한다. 이 전시는 그 말 이전의 세계를 두 개의 언어로 펼쳐 보인다. 하나는 흐름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결의 언어이다.

 

신지아의 화면 앞에 서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무언가에 휩쓸린다. 아크릴과 오일파스텔이 겹겹이 쌓인 표면은 숨을 쉬고, 떨리고, 때로는 우리를 밀어낸다. 들뢰즈가 말한 *'주름(pli)'의 개념을 빌리자면, 감정은 평평한 표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접히고 펼쳐지는 운동이다. 신지아의 캔버스는 바로 이 주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녀는 감정을 안정된 문장으로 번역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정이 우리 몸을 통과하는 그 순간의 진동을 고스란히 남긴다. 진짜 슬픔은 문장이 아니라 몸의 무게로, 진짜 분노는 말이 아니라 가슴의 열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조수빈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그녀의 관심사는 흐르는 순간이 아니라, 남겨진 흔적이다. 관계의 본질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우리는 흔히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만 이해하려 하지만, 그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緣)이 무수히 짜여 있다. 들뢰즈가 말한 '주름(pli)'은 시간의 층위에서도 작동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접혀서 현재 안에 머문다. 도자기 조각이 흩어졌다 이어지며 남기는 물성의 골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관계의 흔적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녀의 청화백자 작업이다. 순백의 백자 위에 청화 안료로 그려진 문양은, 조선 시대 장인의 손길과 오늘 우리의 시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조수빈은 전통의 결을 늘 ‘오늘의 감각’으로 변모시켜,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연결이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두 작가의 언어는 서로를 보완한다. 감정은 흐르며 우리를 흔들고, 인연은 남아 형태를 바꿔 지속된다. 이 전시는 흐름에서 시작해, 결로 천천히 응고된다. 마지막 공간에서 두 언어가 포개질 때, 색은 물성의 골을 따라 흘러들고, 물성은 색의 온도를 품는다.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말이 되지 않던 것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이 전시는 거창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멈춰 자신의 속도를 점검할 것을 권한다. 당신 안에 오래 남은 문장들, 아직 이름 없는 감정의 결들, 한때의 오해와 여전히 유효한 이해가 겹쳐지는 순간들.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의 결이,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손끝에 잡힐 것이다.



 — Curator. 최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