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은
살 빛 드로잉 연작 (6 pieces)
watercolor on paper
21 x 29.7cm
2019
(Each of the 3 pieces)
뭉툭한 머리와 세속적인 귀 / 민첩한 산란 / 붉은 비가 준 선물
watercolor on paper
26 x 38cm
2024
턱도 이빨도 없이
watercolor on paper
26 X 38cm
2024
손정은, 살 빛 (FLESH TINT)
짓이겨진 꽃잎이 만든 얼룩
머리가 박살난 채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남자
부풀어오른 부패한 고기
콧수염 안테나를 공중에 세운 채
죽은 새끼를 씹는 어미 고양이의 턱관절은 초침처럼 정확하다.
발기하는 피부의 전율
어린 장미는 게걸스럽게 태양을 탐하고
빨갛게 익은 종기는
증오의 열기를 품은 우윳빛 액체를 뿜어낸다.
사슬에 묶인, 더위에 지친 개 한 마리가
제 가죽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부러진 척추와 앙상한 갈빗대를 드러낸 채
한줌의 붉은 소금이 되길 기다리며 몸을 말리고 있다.
벌린 입 사이로 빠져나온
한 근의 혀와
한숨이 되어 대기 속으로 사라진, 침묵의 언어.
저 멀리
살이 오른 붉은 고무 목단 뒤에서는
유방이 종기처럼 주렁주렁
등에 자라나서 무게에 짓눌린 여자가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며
항문이 된 동그란 입을 오물거리며 분홍빛 씨앗을 내뱉는다.
툭. 툭. 툭.
마치 보드라운 과육을 훔친 새들이
딱딱한 것들만을 배설하듯이
손정은 작가의 작업은 신의 창조와 비슷한 과정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마치 신이 인간을 만든 것처럼, 아무런 계획 없이 흙을 만지듯 드로잉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작가의 통제를 넘어 스스로 존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손정은은 첫 붓질을 '생명의 첫 걸음'으로 묘사하며, 그 순간에 붉은 색조로 스며드는 '살 빛'을 그려낸다. 여기서 '살'은 육체적 생명, 상처, 변형을 상징하며, '빛'은 영적인 존재와 빛의 색조를 모두 함축한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이미지들이 시처럼 자율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창조한다.
작가는 자신의 드로잉을 통해 감각의 변화를 탐구하며, 이미지들이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게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이미지를 보고 "식물로 변하는 고기덩어리"를 떠올리거나 "로드킬 당한 새의 눈물"을 상상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논리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결되며, 드로잉 자체가 하나의 시가 된다. 그는 드로잉에서 시적 상상력이 "동사(verb)의 세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매번 새롭게 재탄생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그의 대표적인 연작인 "살 빛"은 죽음, 에로티즘, 인간의 비천함, 그리고 신성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연작에서 묘사되는 이미지는 종종 기괴하고도 상징적이며, 인간의 내면적 욕망과 고통을 반영한다. 작품에서 묘사된 붉은 색조의 이미지들은 그로테스크하고 육체적인 상처, 변형, 그리고 분열을 표현하며, 이러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손정은은 이러한 드로잉을 통해 시를 쓰기도 한다. 그의 시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상상력으로 구성되며, 각각의 시어는 드로잉에 등장한 이미지를 설명하거나 확장한다. 예를 들어, "짓이겨진 꽃잎", "죽은 새끼를 씹는 어미 고양이", "사슬에 묶인 개" 등은 그의 드로잉 속에서 등장한 시적 상상력의 일부이다. 이러한 시어들은 각각 드로잉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감각적 경험을 강화한다.
"살 빛" 연작은 단순히 붉은 색조로 그려진 드로잉을 넘어서, 육체와 감각의 변화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설치미술가로서도 활동하며, 그의 드로잉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조각과 설치 작업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신의 은총을 잃어버린 상태의 벌거벗음을 드러내며,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인간의 본성과 감각적 경험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결국 손정은의 작업은 드로잉과 시,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시각적, 감각적, 그리고 철학적인 탐구를 이어가는 여정이다.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감각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고, 동시에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Jung Eun Son's creative process can be likened to divine creation, as it begins without any preconceived plans, much like how God formed humanity from clay. Her drawings emerge spontaneously, as if shaping raw material with her hands, allowing the image to take on its own existence and voice beyond the artist's control. She describes the first stroke of her brush as the "first step of life," where flesh tones, tinted with red, evoke the initial appearance of flesh. Here, "flesh" symbolizes physical life, wounds, and transformation, while "light" embodies both spiritual presence and the shades of illumination. Her work creates a world where images live autonomously, moving like poetry.
Son explores shifts in perception through her drawings, where the images generate meaning independently. For instance, a piece may evoke in her the notion of "a slab of meat transforming into a plant" or "the tears of a bird struck by a passing car." This imagination moves freely, unbound by logical sequences, making the act of drawing itself a form of poetry. She describes her imaginative world as residing within a "verb-driven realm" of action, where nothing is fixed, and everything is in a state of constant renewal and transformation.
Her acclaimed series "Flesh Light" tackles themes of death, eroticism, human frailty, and the loss of divinity. The images often carry grotesque and symbolic elements that reflect inner human desires and pain. The red tones in the imagery express visceral wounds, transformation, and fragmentation, prompting deep reflections on the nature of human existence through these sensory experiences.
Additionally, Son extends her drawing practice into poetry. Her poems arise from the imaginative visions within her images, and each line expands or describes the imagery found in her artwork. Titles such as "Crushed Petals," "Mother Cat Chewing Her Dead Kitten," and "Dog Bound in Chains" are examples of her poetic imagination woven into her drawings. These poetic fragments sometimes serve as the titles of her works, visually expanding the imagery and heightening the sensory experience.
The "Flesh Light" series goes beyond mere depiction of red-toned drawings; it becomes an exploration of the transformations of flesh and perception. Son also engages with installation art, where the images seen in her drawings connect thematically with her sculptural and spatial work. She exposes the vulnerability of human existence and the nakedness of losing divine grace, posing profound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humanity and sensory experience.
In essence, Jung Eun Son’s body of work traverses drawing, poetry, and installation, embarking on a visual, sensory, and philosophical journey. Her works lead viewers to experience shifts in perception while inviting them to contemplate the deeper aspects of human existence.
손정은 (b.1969)
1998 미국 매릴랜드 인스티튜트 컬리지 오브 아트, 조소과, 석사
1995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대학원 조소과, 석사
1992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학사
개인전
2011 <명명할 수 없는 풍경>, 성곡 미술관 중견작가 초대 개인전, 서울 외 8회
단체전
2018<금하는 것을 금하다>,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경기도
2018 <보태니카>, 부산시립 미술관, 부산
2016 <억조창생, 창원 조각 비엔날레>, 성산아트홀, 창원
2016<Looking for Secret>, 더 텍사스 프로젝트
2014 <네오산수>, 대구미술관, 대구
2013 <Love Actually>, 서울 미술관, 서울
2013 <No Comment>, MoA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2012 <카타스트로폴로지>,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11 <한국조각 다시보기, 그 진폭과 진동>, 소마 미술관, 서울
2011 <거북이 몰래 토끼야 놀자>, 경기도 미술관, 경기도
2010 <낙원의 이방인>, 수원미술전시관, 경기도
2009 <다빈치의 꿈: 미술과 과학>,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자치도
2009 <경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09 <랜드 발란스>, 세오갤러리, 서울
2008 <오래된 미래>, 서울시립 미술관 남서울 분관, 서울, 2008
2008 <언니가 돌아왔다>, 경기도 미술관, 경기도
2008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부산 시립미술관-요트경기장, 부산
2007 <유클리드의 산책>, 서울 시립 미술관, 서울
2007 <기억의 기술>, 대안공간 루프-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7 <Shall we smell? > Space C 코리아나 미술관 , 서울
2006 <아트 스펙트럼>,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2005 <The Elegance of Silence: Contemporary Art from East Asia>, 모리미술관, 동경
2005 <코스모 코스메틱>, 스페이스 C 코리아나 미술관, 서울
2005 <쌍쌍>,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04 <나는 작품을 만지러 미술관에 간다>수원미술전시관, 경기도
2004 <Before & After-숨은 그림 찾기>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03 <일주 오픈 하우스>, 씨네큐브 상영관, 서울
2002 <오감만족>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02 <오즈의 북소리>, 세종문화회관 야외 미술 설치전, 서울
2001<상처와 치유>, 예술의 전당, 서울
2001 <부드러움이 강함을 가로지른다> 포스코 미술관, 서울
2000 <PICAF 부산국제현대 미술제>, 부산시립미술관,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