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봉우리로 우뚝… ‘쇳가루 글자’의 재탄생



국립중앙도서관서 퍼포먼스 연 쇳가루 작가 김종구


‘김춘수 시인 탄생 100주년'  특별전서 ‘쇳가루 영상 설치작품’ 선보여 화제

이상의 詩, ‘꽃나무’ 롤 페이퍼에 쓰자 바로 옆 스크린에서는 산수 풍경화가

바닥 눈높이에서 본 쇳가루 글자의 부조

‘능선’ㆍ‘산맥’  등으로 재탄생 

실외 설치하면 바람따라 풍경도 변해

詩ㆍ書ㆍ畵 삼위일체의 조형미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이상의 시(詩) ‘꽃나무’의 도입부다.

바닥에 깔린 하얀 색의 대형 롤 페이퍼 위에 올라선 캔버스 위에 올라선 작가가 먹 대신 직접 갈아낸 쉿가루를 쓰레받기에 담아 흘려내려 시 ‘꽃나무’를 쓰고 있다.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탄생 100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서혜란)에서 마련한 특별전 ‘그대, 내게 꽃이 되어’의 개막일에 진행된 김종구 작가의 퍼포먼스 현장이다.

김작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쇳가루로 글씨를 쓰는 동안 바로 위에 매달려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는 황량한 대지 위로 바람에 불려온 모래언덕처럼 능선이 하나둘 형성되더니 불쑥불쑥 산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개막식 퍼포먼스를 지켜본 관람객들은 모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스크린에 상영되고 있는 영상은 설치된 CCTV카메라가 김작가의 작업을 바닥 눈높이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관람객 눈높이로 보면 작가는 분명 글을 쓰고 있을 뿐인데 그 작업이 눈높이를 낮춰 옆에서 볼 경우 쇳가루 산맥 등 대자연의 광활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지에 스며드는 먹과 달리 쌓여서 누적되는 쇳가루의 물성이 만든 ‘부조(浮彫)’ 효과다.

어찌보면 이상의 시(詩), 김작가의 쇳가루 글씨(書), 스크린 위 풍경(畵) 등이 어우러져 ‘시서화 삼위일체’라는 한국적 조형미의 절정이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김작가는 “올해는 김소월의 ‘진달래꽃’(개벽, 1922) 발표 100년이 되는 해여서 애초에는 시 ‘진달래꽃’을 쇳가루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는 쇳가루의 특성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뤄진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것을 푸념하는 이상의 시 ‘꽃나무’를 떠오르게 해 작품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김작가는 화단에서 ‘쇳가루’ 작가로 통한다.

‘쇳가루’를 이용한 그의 작업은 크게 ‘회화’와 ‘설치미술’로 나눠진다.

‘회화’ 작업인 ‘쇳가루 산수화’는 가루로 표현해낸 산수에 쇳가루가 흩어지지 않도록 아교풀을 뿌려 굳히면 완성된다. 그처럼 제작된 산수화들을 벽에 걸어놓게 되면 쇳가루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녹이 슬면서 붉은 색이 입혀지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열정’과 ‘일상의 시간’이 함께 창조해낸 독특한 풍경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이날 전시 개막식에서 선보인 설치작업, 즉 작가 본인이 ‘쇳가루 모바일 랜드스케이프’(움직이는 풍경)라고 명명한 작업에는 아교풀 등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날 퍼포먼스는 실내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대형 캔버스 위의 시를 읽는 한편으로 스크린 영상을 통해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넘치는 산수화도 함께 감상했다. 그러나 실외였다면 아교풀을 사용하지 않은 만큼 불어온 바람에 의해 캔버스 위 쇳가루가 이합집산하면서 그 결과물은 천지개벽하듯 스크린 위의 풍경들이 요동치는 장면으로 투사됐을 것이다.

“대부분 어려움에 부닥치면 하늘을 우러르며 수평선 너머 멀리 펼쳐진 산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곳에서 평화를 얻죠. 제 ‘모바일 랜드스케이프’ 작업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안정과 평화의 이미지’를 문명의 상징인 쇳가루로 재현해 내는 과정입니다. 이따금 관람객이 그림 가까이 접근하면 관람객의 발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마치 풍경에 포함된 듯한 느낌도 줍니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김작가는 영국 첼시 미술대학에서 공부했고, 19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 2002년 김세중 청년조각상 등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단에서 ‘쇳가루 작가’로서 독보적인 자리에 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한편 이날 전시 개막식에는 나태주 시인이 시낭송을 했고, 박정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윤정모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임옥상 작가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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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6,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