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자를 읽으며 세계를 이해해왔다. 그것은 너무도 오랜 습관이어서, 우리는 그 행위 자체를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희백의 작업 앞에 서는 순간, 그 익숙한 방식은 소리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글은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가 되고, 구조는 공간이 되며, 마침내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한다. 작가는 한글을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확장한다. 자음과 모음은 발음되기를 멈추고, 벽과 기둥으로, 계단과 창으로 변환되며 내부를 가진 구조물로 다시 태어난다.
그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삶이 머물고, 시간이 층위처럼 퇴적되며, 감정이 은밀하게 흐른다. 작품 속 단면들은 단순한 도면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내부를 드러내는 장치이며, 우리가 지나온 기억의 구조를 닮아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살아온 공간을 통해 자신을 이해해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글의 조형적 가능성을 건축적 언어로 확장하여, 그것을 자연 속에 배치하고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그 풍경은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작품 안에서 한글의 구조는 수많은 방과 계단, 창문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펼쳐지며, 관람자는 그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탐색하게' 된다.
이 전시는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가. 문자인가, 공간인가— 혹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층위인가.
김희백의 작업은 읽기의 방식을 전환한다. 눈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몸으로 통과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문득 깨닫는다— 지금 마주한 것이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큐레이터. 최양원
전시명: 김희백 개인전 《공간을 읽다》
전시 일정: 2026.4.8 (수) – 04.29 (수)
관람시간 13:00–18:30 (수 - 토 운영)
기획 | 최양원